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카리 빌파 (문단 편집) == 상징성 == 작중 내내 수많은 사람에게 까이는 스카리 빌파이지만 단 한명, 그를 극찬한 사람이 있다. 바로 치천제. 치천제는 스카리 빌파에 대해 '''"보기 드물게 진솔한 인물이다."''' 라고 평가했으며, 동시에 '''엘시 에더리에게 넘어가야 할 차기 황제의 자격이 스카리 빌파에게도 있다'''고 평했다. 다만 엘시 에더리가 있었기 때문에 스카리는 항상 논외였다고도 설명하지만. 치천제는 어떤 점에서 스카리 빌파를 진솔한 인물이라고 평가한 걸까? 대체 스카리 빌파의 어떤 부분을 보았기에 차기 황제의 자격이 있다고 평한 것일까? 엘시 에더리와 스카리 빌파를 비교해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치천제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스카리 빌파는 엘시 에더리의 하위 호환이다.''' 엘시 에더리의 가장 큰 상징성은 "도덕" 하나로 정의될 수 있겠다. 말이든 독백이든간에 엘시는 '바르지 않습니다' 를 달고 사는 인간이다. 제국 만병장으로서 엘시는 부냐 헨로를 감옥에서 구출할 정당성이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도망친 태위 레이헬 라보 때문에 과로에 허덕이면서도 엘시는 불평하지 않는다.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누리가 사라지고 제국이 사라진 가운데, 아무도 원하지 않는 제국을 오직 그 혼자만이 다시 되찾고자 한다. 어째서? 그것이 바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우습게도 스카리 빌파와 매우 닮아있다. 바로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속인다'''는 점이 그러한 것이다. 제국의 모든 병사를 손발처럼 움직이는 유능함과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듯한 통찰력으로 인해 엘시 에더리는 항상 바른 해답을 내는 주인공스러운 이미지를 형성한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만큼이나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 엘시는 부냐 헨로를 '허영심 많고 아둔한 여자'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바르지 않기 때문에 그런 자신을 억누른다. 엘시는 대장군 자리고 뭐고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사직서를 던지고 도망친 레이헬 라보를 부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이내 그런 자신을 억누른다. 그 또한 옳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스스로 말한 말마따나 그는 모든 것이 거꾸로이다. 사랑하니까 약혼한 것이 아니라 약혼했으니까 사랑하며, 존경하니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복종하니까 존경한다. 내 나라니까 되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되찾으려 하니까 내 나라다. 엘시 에더리는 그러한 사람이다. 그렇게 엘시가 모든 것을 거꾸로 만드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르게 행동하는 자신을 지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절대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는다. 주변 모든 사람이 만병장의 권한을 말하며 부냐를 구하라 말해도 만병장의 지위로 부냐를 구하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모두가 제국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그는 제국을 찾는다. 그렇게 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엘시 에더리의 모든 행동은 자기애로 가득 차있다.''' 본디 도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인이다. 타인을 자신과 동등하게 보고, 자기가 아플 때 타인 역시 동등하게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즉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도덕의 시작이자 끝이다. 하지만 엘시는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나, 거기에 타인의 자리는 없다. 타인을 존중하기에 도덕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존중하라는 가치를 존중하기에 도덕을 실행한다. 그렇기에 엘시는 존중해야 할 사람과 존중해야 할 가치(도덕)가 부딪힐 때 괴로워 할지언정 가치를 선택한다. 그 어떤 설득도 소용없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엘시는 고집불통이다.''' 그렇기에 치천제는 엘시를 세상에서 가장 부도덕한 자라고 평한다. 엘시 에더리를 이런 식으로 파악했을 때, 스카리 빌파의 캐릭터성 또한 자연스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스카리 빌파 또한 엘시만큼이나 자기애가 넘치는 고집불통인 사람이다. 심지어 고집을 위해 자기 자신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속인다는 점까지 똑같다. 단지 엘시보다 능력이 매우매우 떨어지며, 도덕으로 자신을 겉포장하지 않을 뿐.''' 스카리는 절대 도덕을 말하지 않는다. 세상의 여론과 비교해 옳고 그름을 파악하지 않는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자기 자신의 형편에 맞다면 그것이 정답이다. 세상이 틀렸다고 말하면 틀린건 세상이다. 그렇기에 세상이 엘시를 불패의 대장군으로 칭송하더라도 그에게 엘시는 여자 하나 못지키는 얼간이이다. 아버지 락토 빌파가 무슨 소리를 하건 그건 노인네의 헛소리이고, 자기가 선택한 길은 항상 옳다. 사실 스카리 역시 현실을 모르는게 아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너무나 소중한 스카리는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마저 속인다. 그렇기에 그가 부냐를 사랑한 이유는 단지 엘시 에더리에 대한 반항심에 불과함에도 그는 스스로가 부냐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는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방향은 다르지만 엘시 에더리와 무척이나 비슷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 도덕이라는 소도구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이유는 그냥 자기가 그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그는 그냥 바라니까 추구한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를 속이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 의미에서 어린아이나 가질 수 있는 순수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치천제는 스카리 빌파를 보기 드물게 진솔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순수한 자연계에서 생명이 지켜야 할 제1순위 본능이라는 점에서, 그는 확실히 진솔한 사람이다.[* 한편, 천경유수 지알데 락바이에 의하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도덕의 기본중의 기본이라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이라 한다면, 스카리는 세상 누구보다도 도덕적인 인물일 것이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그가 발케네 도둑이라는 자신의 본질에 누구보다도 솔직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더럽고, 치사하고, 속이며, 언제나 자신의 안위를 우선으로 두는 것은 그야말로 도둑놈다운 행동이다. 두려움을 받을지언정 존경을 받기는 힘들겠지만, 여하튼.] 그렇다면 마지막 궁금증, 즉 왜 치천제가 스카리 빌파에게도 차기 황제의 자격이 있다고 말했는지도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치천제는 사람의 신이 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녀는 올바름을 선포하며,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저항에 밀려 사라지지만 사람들이 의심에 가득 찰 즈음 다시 나타나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하는 과정을 반복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차기 황제는 사람의 신인 치천제를 영원히 숭배하는 제사장이어야 한다. 설령 세상 전부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것이 틀렸다고 외치더라도 차기 황제인 그만은 신이 옳으며 신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굳게 믿어야 한다. 차기 황제란 세상을 신으로 이끄는 존재여야 한다. '''차기황제의 덕목이란 제사장의 덕목이며, 광신도의 덕목이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주변이 뭐라 말하든 절대 자신을 바꾸지 않은 두 사람, 엘시 에더리와 스카리 빌파는 분명히 보기 드문 인재이기는 하다.'''[* 스카리를 충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만약 스카리가 자기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치천제를 긍정할 필요가 생긴다면, 스카리는 그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치천제를 숭배할 것이다. 도덕을 버릴 수 없어 치천제를 숭배할 수 밖에 없었던 엘시처럼.] 적어도 치천제에게 있어 스카리는 엘시와 비교해도 간단히 뒤쳐지지 않는 귀한 인재였을 것이다. 단지 하늘은 그를 낳고 또 엘시 에더리를 낳았을 뿐... 잠시 그의 불운한 인생을 위해 묵념하도록 하자.[* 물론 현실 파악이 불가능한 그는 엘시가 있었던 없었던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는 글렀고, 엘시 대신이었다 할지라도 기껏해야 광신에 미친 제사장 정도로나 인정받았겠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세상 모든 이들에게 조롱받는 비참한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류: 피를 마시는 새/등장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